국악여행/창작국악 해설

장엄한 우주의 시, 정대석의 '일출'

국악사랑 2006. 10. 17.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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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대석 작곡 거문고 독주곡 '일출(日出)'


                              " 장엄한 우주의 시 "

 

가야금 독주곡하면 먼저 황병기 작곡의 '침향무'를 꼽듯이 이 곡 '일출'은 거문고 독주곡을 대표하는 곡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문고 주자라면 누구나 한 번은 연주를 해봤을 이 곡은 그만큼 높은 예술성과 대중성을 겸비하고 있다.

 

정대석은 주로 거문고를 위한 음악을 작곡해 왔다. 거문고 독주곡 '일출'과 '달무리', 거문고 협주곡 '수리재(水理齊)' 등이 그것이다. 이들 작품은 모두 수작으로 평가되고 있는데, 이는 그가 탁월한 거문고 주자라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오랜 연주자 생활을 통하여 거문고의 악기적 특성에 정통해 왔으며 이를 바탕으로 거문고의 새로운 연주 기교를 계속해서 개발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사용하는 다양한 기교들은 억지스러운 데가 없다. 이들 기교는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가 작품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적절히 뒷받침해 준다.

 


         " 연주가로서의 장점을 작품에 십분 발휘 "


우리는 많은 작곡가들의 작품에서 기교가 승하여 오히려 작품을 망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이는 수단과 목적을 혼동하는 데서 오는 것으로, 기교는 단지 작품의 완성을 위한 수단으로 인식될 필요가 있다.

 

정대석의 작품에서는 이러한 새로운 기교들이 작품 내용과 일심동체를 이룬다. 그는 기교를 과시하지 않고 이를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을 위해 이용할 뿐이다. 연주가로서의 그의 오랜 경험은 아마도 이런 기교들을 표 나지 않게 작품 속에 녹아들도록 이끌었을 것이다.

 

연주가로 출발하여 작곡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는 작곡가로는 정대석 외에도 황병기(가야금), 김영동(대금), 이상규(피리), 박범훈(피리), 김영재(해금) 등을 들 수 있다.

 

황병기는 '침향무' 외에 '비단길', '미궁' 등 가야금을 위한 작품을 주로 발표해 왔고, 김영동은 '삼포 가는 길', '명상음악' 등 주로 소금이나 대금을 이용한 음악들을 많이 작곡해 왔으며, 이상규는 대표적인 작품인 피리협주곡 '자진한잎'을, 박범훈은 '피리삼중주를 위한 메나리'를, 김영재는 해금협주곡 '방아타령'과 '공수받이' 등을 발표하는 등 각자의 전공 분야에서 역사에 남을 명곡들을 만들어 내었다. 이는 연주가로서의 장점을 십분 발휘한 것으로 한국 창작음악 발전에 큰 원동력이 되고 있다.

 

정대석의 음악은 온화한 그의 성품처럼 날카롭거나 모나지 않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또 처음 듣는 사람에게도 낯설지 않고 친근한 감을 준다. 그의 관현악법은 무겁지 않고 가벼우며 경쾌한 느낌을 준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이 곡 외에 거문고 협주곡 '수리재'가 있는데, 이 곡은 작곡가의 친우인 다정 거사(茶丁 居士)가 살고 있는, 강원도 마곡 강가에 지어놓은 초가집 수리재 부근의 아름다운 정경과 여기에서 칩거하는 다정 거사의 멋스러움을 표현한 작품이다.

 


        " 회화적인 일출의 장엄함을 청각적으로 표출 "


거문고 독주곡 '일출'은 정대석이 1977년에 작곡한 것으로, 장엄한 일출의 광경을 거문고로 표현한 곡이다. 이 곡은 일출의 회화적 인상(印象)을 청각적으로 표출해 내기 위해서 전곡을 '어둠'과 '먼동', '떠오르는 해'의 3장으로 구성하고 있다.

 

제 1장 '어둠'


       "짙은 어둠 속에

          멀리 북소리가 들린다.

          우주의 소리,

          해가 잠을 깨는 소리다.

          해는 부시시 잠에서 깨어나

          어둠 속에 북을 울린다.

        두두둥 둥둥 두두둥"


거문고의 낮고 부드러운 울림과 속삭이는 듯한 소리가 '어둠 속에서의 해'의 태동(胎動)을 표현한다.


거문고의 괘상청과 쾌하청을 동시에 술대로 내리긋는 소리는 시원하고 장쾌한 맛을 준다. 이 기법은 전 곡을 통하여 매우 효과 있게 사용된다. 곡은 중간에 한 번 전조되어 전개된 다음 2장으로 넘어간다.


제2장 '먼동'


        "멀리 먼동이 터 오고

         북소리 점점 가까이 들려오면

        온 누리 잠을 깨고

         새 해 맞을 준비를 한다."


제2장 '먼동'은 처음 렌토(Lento)의 느린 빠르기로 시작하여 점점 속도가 빨라진다.


거문고가 같은 음을 반복하면서 힘을 축적하고, 빠른 음형과 느린 음형이 교차하면서 연주되면 이윽고 속도가 빨라지면서 역동감 넘치는 가락이 빠르게 연주된다. 곡은 잠시 숨을 고른 뒤 3장으로 넘어간다.


제3장 '떠오르는 해'


        "마침내 해가 떠오른다.

          우주의 신비를 머금고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며

          북은 더욱 요란히 울리고

      산과 바다는 붉게 타오른다.

          이 때 구름은 너울너울 춤추며

          해의 솟아오름을 기뻐한다."


제3장 '떠오르는 해'는 약간 느린 부분과 중간의 빠르고 격렬한 부분, 그리고 마지막의 느리고 고요한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처음 느리게 시작한 가락은 때로 격렬한 음형을 연주하면서 일출을 재촉한다. 속도가 빨라지고 16분음표의 음형이 화려하게 펼쳐지면서 일출의 장엄한 광경이 거문고로 표현된다.

 

이 부분은 전혀 새로운 기교로 구성되어 있고 그 진행은 눈이 부실 정도로 빠르다. 가락은 더욱 뜨겁게 달아오른 뒤 인상적인 트레몰로(tremolo)를 연주하면서 자지러들고 이번에는 느리고 조용한 악구가 나와 떠오른 해의 고요한 자태를 그리면서 곡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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