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동작곡 관현악곡 '매굿'
" 표제적인 관현악법으로 표현한 장수매 이야기"
국악이라고 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사람도 김영동의 이름 석 자가 나오면 눈을 반짝이면서 관심을 나타낸다. 그 만큼 김영동은 어떠한 국악 작곡가보다도 대중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안겨 준 작곡가다.
많은 사람들이 전통음악에는 관심 없어 하면서도 김영동의 음악에는 관심을 갖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는 전통음악과 거리를 두는 데 일단 성공했다. 그것은 그의 음악이 구시대의 감각에 머무르지 않고 현대적인 시대감각을 가장 첨예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따라서 그의 음악을 들으면 어디에서도 낡은 냄새를 찾기가 어렵다.
그의 음악에서는 늘 새롭고 신선한 생명력이 꿈틀거린다. 그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자유분방하면서도 적극적인 삶의 모습과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의 음악의 생명력은 전통음악의 깊은 정신을 이어받는 데서 비롯된다. 그의 음악은 전통음악과 선이 닿아 있으면서 그 정신을 더욱 더 깊게 표현해 준다. 그래서 그의 음악을 들으면 어떠한 국악보다도 국악적인 느낌을 느끼게 된다.
" 한국인 특유의 미적 감각을 일깨워주는 가락 "
김영동이 일반인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후반으로 그는 사회성이 짙은 노래들을 작곡하여 대학가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어디로 갈꺼나'는 이 때 작곡된 것으로 국악적인 창법과 사회성이 결합하면서 당시의 젊은이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는 '조각배'와 '누나의 얼굴' 등 국악에 바탕을 둔 새로운 선율의 가요와 동요를 중심으로 작곡 활동을 펼치면서 연극음악 '한네의 승천'을 비롯하여 '어둠의 자식들', '태', '아다다' 등의 영화음악과 TV음악 '삼포 가는 길' 등 실용음악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면서 대중들과의 음악적 교감을 꾸준히 넓혀왔다.
국악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 속에서도 그의 음악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게 된 것은 그의 음악이 국악에 바탕을 두면서도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음악어법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국악을 단지 지루하고 고리타분한 것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에게 그의 음악은 신선한 감동을 주었고 그 감동은 우리 음악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착을 갖게 되는 새로운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그의 음악은 한국인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잠재해 있는 한국인 특유의 미적 감각을 새롭게 일깨워 준다. 시원하게 쭉 뻗어 가는 선율과 다양한 시김새, 그리고 원초적인 리듬의 구사가 단순하면서도 강한 표현력을 지니고 우리들에게 다가온다.
" 장수매 설화를 장엄하게 묘사 "
관현악곡 '매굿'은 황해도 장산곶 지방의 장수매 설화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으로 마을의 수호신인 장수매의 이야기가 감동 깊게 그려져 있다. 말하자면 이 곡은 뚜렷한 이야기 줄거리를 갖고 있는 표제음악이다. 김영동은 이러한 표제음악의 작곡에 특출한 능력을 보인다. 이 곡에 사용된 표제적인 관현악법은 이후 국악관현악의 작곡기법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매굿'은 모두 8장으로 이루어졌는데 처음과 끝에 마을의 매굿 장면을 깔고 그 중간에 장수마을의 이야기를 짜 넣어 매굿이 열리는 현실과 장수매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연결시키고 있다.
제1장 '매굿'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첫 부분은 무(巫)의식의 주술적인 분위기로 시작된다. 마을의 당집 옆 큰 고목나무 밑에 각종 제물을 차려놓고 마을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무당이 '매굿'을 시작한다. 징의 규칙적인 리듬에 실려 관현악의 트릴과 타악기의 트레몰로가 무언가 모를 불안과 두려운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두 번째 부분은 남성의 구음이 장수매의 비극적인 운명을 암시하듯 상여소리를 닮은 가락을 노래한다.
제2장 '출어'. 마을사람들은 그물과 배를 손질하고 바다로 나간다. 나발과 나각의 뱃고동 소리가 힘차게 울리고 관현악도 출어의 들뜬 마음과 축제적인 분위기를 흥겨운 리듬에 실어 연주한다.
제3장 '파도'. 폭풍우가 거칠게 몰아치는 가운데 뱃사람들은 있는 힘을 다해 파도와 싸운다. 남성합창의 '영차 영차' 소리와 '어기여차' 소리는 파도와 싸우는 뱃사람들의 단결된 힘을, 타악기의 강한 트레몰로는 파도의 위협적인 모습을 나타낸다.
제4장 '귀환'. 파도를 물리친 뱃사람들이 마을로 귀환한다. 느린 아악 풍의 짧은 도입부에 이어 전 관현악이 장엄한 가락을 연주한다. 살아 돌아온 마을 사람들의 벅찬 감정을 표현한다.
제5장 '평화'. 당적의 잔잔한 율동에 실려 해금이 부드럽고 여유 있는 선율을 연주하면서 평화스러운 마을의 모습을 그린다.
제6장 '천둥'. 난폭한 북의 연타와 관악기들의 기분 나쁜 트릴, 여기에 징, 바라, 공의 광란적인 음향이 한데 뒤섞이며 폭풍우와 천둥, 번개 속에 벌어지는 장수매와 구렁이의 혈투를 그린다. 마을 사람들이 다리에 매 준 매듭이 나뭇가지에 걸린 장수매와 나무 위로 올라간 구렁이의 사투는 밤새 이어지지만 안타깝게도 마을의 수호신인 장수매는 장렬한 죽음을 맞는다.
제7장 '죽음'. 해금의 긴 지속음과 양금의 트레몰로에 싸여 남성 구음이 느리게 불려진다. 장수매의 죽음의 의미를 되새기듯 이 가락은 슬픈 감정을 극도로 억제하고 있다. 단순하면서도 의식의 깊은 곳을 파고드는 이 가락은 김영동 음악의 진수를 보여준다. 이 곡 전체의 클라이막스이며 가장 감동적인 부분이다.
제8장 '매굿'. 제7장의 끝 부분에 이르러 분위기가 점차 바뀌면서 제8장 '매굿'이 연주된다. 말하자면 매굿이 열리는 현실로 다시 돌아온 셈이다. 매우 느리고 장중한 음악이 구음과 관현악으로 연주된다. 이 때 제 1장 '매굿'에서 징이 연주됐던 리듬을 이번에는 장구가 맡아 똑같이 반복하면서 무(巫)의식의 주술적인 분위기를 짙게 풍긴다. 곡의 끝 부분은 구음의 높은 가성에 이어 전 관현악이 힘차게 연주하면서 곡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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