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자연 속에서 듣는 국악 "
날씨가 따뜻해 지면서 자연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요즈음은 주 5일제로 주말에 여행을 다녀오는 것도 일상적인 일이 되어버렸다. 산과 계곡에서 자연에 묻혀 일에 찌든 심신을 쉴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거기에 자연에 어울리는 좋은 음악을 즐길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계곡의 맑은 물과 청정한 공기, 그리고 시원한 음악... 생각만 해도 즐거운 일이다.
" 자연과의 합일을 지향하는 국악의 속성 "
그렇다면 자연속에서 어떠한 음악을 듣는 것이 좋을까. 혼잡한 도시생활로 복잡해진 머리를 식히기에는 우리의 국악이 적격이 아닌가 싶다. 대자연 속에서 듣는 국악은 정말 각별한 맛이 있다. 그것은 국악의 속성이 본래 자연과의 합일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양문화가 자연에 도전하고 그것을 정복하는데 주안점을 둔 문화라면 우리의 문화는 자연에 순응하고 자연과의 화합을 지향하는 문화이다.
집을 하나 짓더라도 그 주위의 자연경관에 거슬리지 않도록 모양새에 신경을 썼고 건축에 쓰이는 재료 하나하나도 자연의 생김 그대로가 드러나도록 했다. 또 정원을 꾸미는데 있어서도 인위적인 냄새를 배제하고 보다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노력함으로써 정원이 자연의 한 부분이 되도록 했다.
말하자면 한국의 정원은 풍류생활의 장이요 정신수양의 장이었으며 또 자연과의 합일을 꾀하는 화합의 장이었다. 조각이나 회화에 있어서도 가능한 한 인위적인 것을 배제하고 솔직함과 소박함을 중시함으로써 표현의 자연스러움을 획득하고자 노력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 자연스럽고 즉흥적인 음악이 발달한 국악 "
이러한 한국의 독특한 문화적 속성 속에서 자라온 국악 역시 인공적인 아름다움보다는 자연스러움을 추구해 왔다. 우리의 음악에서 특히 산조나 시나위 같은 즉흥적인 음악이 발달한 것도 이런 이유이다. 산조는 장단이란 틀 속에서 연주자가 즉흥적으로 가락을 이끌어 가는 기악독주음악이다. 따라서 연주자의 마음상태나 연주장소의 분위기에 따라 음악은 시시각각 변하기 마련이다. 시나위는 이러한 즉흥적인 음악이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연주자들에 의해 동시에 이루어지는 음악이다. 개개의 연주자들은 같은 장단과 같은 선법의 틀 속에서 자유자재로 음악을 만들어 간다. 그러면서도 각 악기들은 서로 간에 조화를 이루면서 통일성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다.
국악이 자연스러움을 중시하는 것은 악기를 만드는 방법에서도 드러난다. 대나무를 싹둑 잘라 듬성듬성 구멍을 낸 다음 그대로 악기로 사용한다. 단소며 대금이며 피리 등의 관악기가 대개 그렇다. 가야금이나 거문고, 아쟁 등의 현악기도 자연의 재료를 거의 그대로 사용한다.
이러한 점은 자연의 재료를 그대로 쓰기보다는 이를 인위적으로 변형시키고 합성시켜 악기를 만드는 서양음악의 경우와는 많은 차이점이 있다. 서양의 악기는 여러 금속을 합성하여 만든 금관악기들이 많이 발달해 있다. 트럼펫이나 트럼본, 튜바, 혼 등이 모두 그런 악기들이다. 또 바이올린이나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 등의 현악기도 자연 그대로의 목재를 사용치 않고 이를 분쇄해서 프레스기로 압축, 변형시켜 만든다.
따라서 국악기의 음색은 서양악기에 비해 대체적으로 자연의 원음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악기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면서 이루어내는 음악은 다른 어떠한 음악보다도 자연이 이루어내는 물소리와 바람소리, 새의 울음소리 등과 어울려 상큼한 조화를 이룬다.
국악을 실제로 배워보면 매우 재미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국악이 우리의 체질에 아주 잘 맞는 음악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들은 오랜 시간을 국악과 단절되어 살아 왔기 때문에 선뜻 다가서기에 망설여지고 또 쉽게 접근하기가 어렵지만 일단 그 음악에 입맛을 들이면 그 맛깔스러움에 다른 음악은 거들떠보지도 않게 된다. 그것은 그러한 맛을 다른 음악에서는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우리들이 한창 젊을 때에는 양식을 즐기다가도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다시 한식을 즐기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 자연 속에서 듣기에 좋은 수제천 "
그러면 국악 중에서도 어떠한 음악을 듣는 것이 좋을까. 필자는 자연 속에서 듣기에 가장 좋은 음악으로 아악곡 <수제천>을 추천하고 싶다. 이 곡은 많은 악기가 함께 연주하는 합주곡으로 아악곡의 백미라 할 수 있다. 특히 창공을 찌를 듯이 높이 솟아오르는 피리소리와 시공을 힘차게 가르는 장구와 좌고의 울림이 시원스러운 느낌을 준다. 그러나 이 곡의 템포는 매우 느리다. 느리다 못해 템포를 인식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서양의 메트로놈 기호로 M.M = 25 정도의 빠르기인 이 곡은 인간의 평상적인 속도 감각으로는 쉽게 인식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들은 이 곡을 들으면서 일상적인 감각을 초월하여 형이상학의 세계로 쉽게 빠져드는 것이다.
또 이 곡은 하나의 음을 길게 끄는 부분이 많다. 그것은 연주자들에게 매우 느린 호흡을 요구한다. 이 느린 호흡은 자연히 단전호흡으로 연결된다. 필자가 어떤 연주자에게서 들은 바로는 이 곡을 연주 할 때 자신의 몸이 새털처럼 가벼워지면서 공중으로 붕 뜨는 듯한 신비로운 체험을 몇 번 가진 적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 곡의 흐름이 연주자의 내면의 기의 흐름과 일치되면서 자연스럽게 단전호흡이 이루어져 일어난 현상으로 풀이된다. 그러므로 이 곡은 조용히 명상에 잠겨 그동안 쌓인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마음을 수양하기에 적합한 음악이라 할 수 있다.
" 활달하고 경쾌한 맛이 시원스런 가야금 병창 "
<가야금 병창> 역시 자연 속에서 듣기에 좋은 음악이다. 느린 <수제천>과는 달리 활달하고 경쾌한 맛이 시원스럽다. <가야금 병창>은 노래하는 사람이 가야금을 타면서 단가나 판소리의 한 대목을 부른다. 판소리에서는 극적인 상황을 다양한 창법을 써서 실감 있게 묘사하는데 중점을 두고, 산조에서는 악기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고도의 연주기교를 과시하는데 비해 가야금 병창에서는 가야금과 창을 어떻게 조화시키는가 하는 점이 중요하다. 가야금 병창곡으로 즐겨 불리는 곡은 단가에서 <녹음방초>, <죽장망혜>, <호남가>, <백발가> 등이며 판소리에서는 춘향가 중 <사랑가>, <천자뒤풀이>, 심청가 중 <화초타령>, 수중가중 <고고천변>, 흥보가 중 <제비노정기> 등이다. 특히 박귀희가 부르는 가야금 병창은 낭랑한 목소리와 가야금의 맑고 경쾌한 성음이 잘 어울려 일품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음악이다.
"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시조 "
또 자연을 즐기면서 누구나 쉽게 즐기며 부를 수 있는 것이 시조이다. 가곡이나 가사와는 달리 배우기도 쉽고 또 한 곡조만 익혀놓으면 가사를 바꿔 많은 곡을 부를 수 있다. 옛날에는 노인 분들이 주로 불렀으나 요즘은 젊은 사람들도 많이 부른다.
시조를 부를 때는 대금이나 세피리, 해금 등으로 반주를 하기도 하지만 반주악기가 없을 때에는 손으로 무릎장단을 치면서 그냥 노래해도 좋다. 정자에 앉아 부르는 시조소리는 운치도 있으려니와 보기도 좋다.
우리의 마음 속에는 국악의 정신이 깊이 내재되어 있다. 그것이 어떠한 계기를 갖지 못해 밖으로 표출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자연 속에서는 국악과 함께 보내는 것이 어떨까. 떠들썩한 춤판이나 고스톱 판 대신에 조용히 국악을 들으면서 마음을 수양하고 자연과의 합일을 꾀해 보는 것도 보람 있는 일일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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