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여행/창작국악 해설

창공을 솟아오르는 피리가락, 이상규의 '자진한잎'

국악사랑 2006. 10. 25.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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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규 작곡  피리협주곡 '자진한잎'


                " 창공을 솟아오르는 피리가락 "

 


국악작곡가 중에는 황병기처럼 1~2년에 한 곡을 온갖 난산 끝에 완성해내는 작곡가가 있는 반면 이상규처럼 실타래가 술술 풀리듯 쉽게 다산을 하는 작곡가도 있다. 그의 이러한 작품 성향은 대 편성 관현악곡을 비롯해 협주곡과 실내악곡, 독주곡, 성악곡 등 그의 작품수가 이미 100여 곡을 훨씬 넘고 있는 데서도 엿볼 수 있다. 

 

그의 작품 중에서 잘 알려져 있는 곡들은 대개 협주곡이다. 대금협주곡 '대바람소리'를 비롯하여 해금협주곡 '수나뷔', 오늘 감상할 피리협주곡 '자진한잎'은 협주곡의 고전으로 불릴 만큼 국악연주회에서 자주 연주되고 또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그 중에서도 한 곡을 고르라면 단연 피리협주곡 '자진한잎'을 꼽을 것이다. 그만큼 이 곡은 구성이 탄탄하고 독주피리와 관현악의 절묘한 조화가 크게 돋보이는 작품이다.

 

 

            " 정악에 뿌리를 둔 남성적인 힘 "

 

이상규의 작품은 대부분 정악의 어법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또 그 자신 뛰어난 정악대금 주자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그의 작품에서는 느리면서도 장중한 궁중 아악의 분위기를 쉽게 느낄 수 있다. 그의 진가가 십분 발휘되는 지점도 바로 이 부분이다.

 

피리협주곡 '자진한잎'은 이상규가 1972년에 작곡한 곡이다. 이 곡에는 피리의 꿋꿋하고 남성적인 특성이 잘 나타나 있다. 피리협주곡 '자진한잎'의 가락은 전통음악 중에서도 '사관풍류' 또는 '경풍년'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 관악합주곡 '자진한잎'의 가락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관악합주곡 '자진한잎'은 전통가곡에서 파생된 것으로 이 중에서 몇 곡을 모아 이를 가곡 반주 스타일이 아닌 대 편성의 관악합주곡으로 연주한 것이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전통가곡이 1세대요, 관악합주곡 '자진한잎'이 2세대, 피리협주곡 '자진한잎'이 3세대인 셈이다.

 

 

             

          " 전통음악에 새로운 시대감각 접목  "

 

피리협주곡 '자진한잎'에서 독주피리는 관악합주곡 '자진한잎'의 가락을 이어받아 발전시키고, 관현악은 전통가곡의 분위기를 짙게 풍긴다. 그러나 독주피리의 가락은 관악합주곡 '자진한잎'의 피리가락보다 더 장엄하고 남성적인 기품이 있다. 

 

이 곡에서 관현악은 독주피리에 종속되지 않는다. 독주피리의 가락을 부드럽게 감싸면서도 자신의 모습을 의연하게 끝까지 지켜 나간다.

 

이 곡의 처음은 느리고 조용한 관현악의 선율로 시작된다. 긴 흐름의 선율 선은 안개에 싸이듯 모호하다. 이때 가야금과 거문고가 연주되면서 가곡의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피리의 선율이 활기를 띄면서 독주피리의 주선율을 암시한다. 곡의 속도가 갑자기 느려지면 전 관현악이 장대한 주선율을 힘차게 연주한다.


독주 피리가 이를 받아 연주한 다음 관현악의 뒷받침을 받으면서 이 주선율의 단편을 전개한다. 창공을 솟아오르듯 장엄하게 피어오르는 피리 가락은 남성적인 힘과 기백에 넘쳐 있다. 마치 하늘을 찌르는 듯한 그 기상은 주로 4도 음정으로 도약하는 독특한 음형에서 비롯된다. 이 4도 음정은 점차 높은 음역으로 전개되면서 힘을 더한다. 

 

피리의 가락이 잦아들면 관현악이 이를 받아 연주한 다음 다시 처음의 주선율이 독주피리에 의해 연주되는데 이때 주선율의 첫머리가 새롭게 변형되어 나타난다. 전통 국악 곡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환두(換頭) 형식이다.

 

주선율의 전개가 끝나면 이번에는 현악기의 낮은 음이 서서히 상승하면서 순차적인 음 진행을 하는데 이때 대금, 피리 등의 관악기가 가세하여 분위기를 크게 고조시킨다. 이 부분은 주로 순차적으로 상생하는 음 진행과 미분음 적인 음의 끌어올림에 의해 주도된다.

 

관현악이 상승 음형에 의해 충분히 힘을 축적하면 이 힘을 바탕으로 독주피리가 다시 상승음형을 연주하면서 뜨겁게 타오른다. 이 부분의 넘치는 기운은 듣는 이의 가슴을 끓어오르게 한다.


이 기운이 가라앉으면 이번에는 앞의 음형과는 정반대의 하행 음형으로 시작되는 섬세한 가락이 연주된다. 이 가락은 잔잔한 슬픔에 잠긴 듯 매우 아름답다. 이 가락이 전개되면서 내는 높은 음역의 긴 음은 단순하면서 시원스런 맛을 낸다.


이윽고 피리가락이 그치면 당적과 현악기가 연주되면서 곡의 처음에 제시됐던 주선율을 암시하고 이어 전 관현악이 주선율을 힘차게 연주하는데 말하자면 재현부라 할 수 있다. 

 

관현악의 뒤를 이어 독주 피리가 주선율의 단편을 높은 음역으로 노래하고 맨 끝 음을 길게 끌며 여운을 남기면 관현악의 짧은 울림 후에 독주피리가 자유스럽게 카덴자(Cadenza)를 연주한다. 곡은 곧 종지부에 들어가 전 관현악이 주선율의 가락을 장엄하게 연주하면서 곡을 끝맺는다. 

 

이 곡의 훌륭한 점은 전통음악의 소재를 사용하되 그 정신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곡에 새로운 시대감각을 불어넣어 전통을 재창조했다는 데 있다. 우리는 이 곡을 통해서 전통음악의 아름다움과 깊은 예술성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