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국악사이야기, 무용음악의 발전
20세기 국악사이야기
" 무용음악의 발전 "
무용음악은 춤을 위한 음악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춤과 음악은 예로부터 뗄래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맺어 왔습니다. 그래서 춤의 역사와 음악의 역사가 서로 겹치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창작음악을 사용한 무용이 본격적으로 발표되기 시작한 것은 1962년에 국립무용단이 창단되면서부터 라고 하겠습니다. 국립무용단은 1963년에 처음으로 국악에 의한 무용음악을 만들어서 공연을 하게 되는 데요, 김문숙 안무의 <영지>라는 작품과 강선영 안무의 <산제>라는 작품에 국악작곡가인 김기수 선생과 양악작곡가인 최창권 선생이 작곡가로 참여하면서 이후 국립무용단의 무용음악에 국악작곡가들이 대거 참여하게 됩니다.
김기수 선생은 이 작품 이전에도 1955년에 김백봉 안무의 <내 마음의 전설>과 1956년에 김천흥 안무의 <처용랑>의 무용음악을 작곡하는 등 60년대의 무용음악에서 <수로부인>의 음악을 작곡한 김희조와 함께 활발한 활동을 펼치게 됩니다.
김기수와 김희조에 이어 박범훈, 이상규 등이 국립무용단의 무용음악을 작곡해 왔는데요. 이중에서 박범훈은 1973년의 <사의 승무>를 시작으로 <황진이>, <도미부인>, <대지의 춤>에 이어 <이차돈의 하늘>에 이르기까지 국립무용단의 무용음악을 가장 많이 작곡한 작곡가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특히 < 사의 승무 > 라는 작품은 그때까지 작곡된 짤막한 무용음악과는 달리 대본에 의해서 한시간 이상으로 작곡된 최초의 무용음악이라 하겠습니다. 박범훈과 함께 많은 무용음악을 쓴 작곡가가 김영동인데요, 김영동은 1983년 무용음악 <여름빛>을 시작으로 <먼길>, <멀리 있는 무덤>, <매굿> 등 많은 무용음악을 작곡했습니다.
이들 작곡가들에 의해서 무용음악이 다양하게 발전해 왔는데요, 국악기에 플롯이나 오보에 등 서양악기를 결합시키거나, 구음 시나위 형태, 또는 국악기에 기타나 신디사이저를 결합시키는 등 국악의 영역을 넓히는데 무용음악이 많은 부분 기여를 했다고 하겠습니다.
무용음악 작곡자들은 이런 서양 악기의 도입을 통해서 인물이나 상황의 성격에 맞는 보다 적절한 음악을 만들어 왔는데요, 이것을 통해서 서양악기의 한국적 수용이라는 우리음악의 과제를 꾸준히 실천해 왔다고 하겠습니다.
결국 어떤 악기를 썼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악기를 통해서 어떤 음악을 만들어 내는가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국악기를 쓰는데 전혀 한국적이지 못한 것보다는 양악기를 쓰더라도 우리적인 정서를 표출해 낸다면 그것이 더 바람직스럽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아무튼 이런 무용음악이라든지, 연극음악, TV음악 , 영화음악 등에서 국악이 자주 사용됨으로 인해서 국악이 좀더 대중화되고 또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