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국악사 이야기 1
" 1900년대 초의 음악상황 "
'20세기 국악사 이야기' 이 시간에는 1900년대 초의 음악상황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900년대 초는 개화세력의 근대문화수용이 본격화되는 시기로 기독교 찬송가와 창가의 보급이 활발해지고 서양식 군악대가 창설돼서 양악을 연주하는 등 양악의 보급이 활발히 이루어지게 됩니다.
반면에 국악의 경우는 조선왕조의 멸망과 한일합방으로 그 활동이 더욱 더 위축되게 되는데요, 조선시대 국가 음악기관인 '장악원'은 이 시기에 '이왕직 아악대(1910)'를 거쳐 '이왕직 아악부(1913)'로 바뀌면서 그 인원이 대폭 축소되어 명맥만을 유지하게됩니다.
일제는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학교음악교육에서 국악을 완전히 배제시키게 되는데요, 현재 국악이 대중 속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근본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반면 양악은 사립 및 공립학교 교과목에 포함됨으로써 깊이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이처럼 국악은 학교음악교육에서 철저히 배제된 채 1919년에 설립된 이왕직 아악부원양성소와 1911년에 설립된 최초의 사립음악교육기관인 조선정악전습소에서 그 맥을 잇게 되는데요, 조선정악전습소는 1909년의 조양구락부를 모체로 창립되어서 나중에는 한국정악원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정악의 경우 이처럼 이왕직 아악부원양성소와 조선정악전습소를 통해 명맥을 유지했지만 민속악의 경우는 그나마도 뚜렷한 교육기관도 없이 권번이라 불리는 사설 기생조합에 의해 명맥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이러다 보니 민속악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나빠지고 시민들의 호응을 받지 못하는 악순환이 계속됐습니다.
이 시기에 중요한 음악상황의 하나는 창극의 등장인데요, 창극의 등장은 전통적인 판소리의 공연형태를 벗어나 무대에서 여러 배역에 의해 공연되고 또 이를 통해 일반 시민들을 음악 수용층으로 폭넓게 수용하게 됐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 창극은 1902년에 설립된 협률사와 1908년에 설립된 원형극장인 원각사를 통해 태동되어 주로 춘향가 , 심청가, 수궁가, 흥보가 등 판소리 다섯 마당을 중심으로 공연하게 됩니다. 이 창극운동은 1933년 설립된 조선성악연구회 산하 창극좌에서 이어받게 되는데요, 1939년의 동일창극단, 곧이어 창단된 화랑창극단 등에 의해 창극활동이 활발히 펼쳐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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